lsy-01.jpg 
이상엽_<이상한 숲, DMZ>#1_digital inkjet print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이 찍은, 기묘하고 슬픈 DMZ 숲 풍경
line_dot.png

민통선과 DMZ은 누구나 쉽게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은 2009년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전 60년을 돌아보는 출판기획으로, 민통선과 DMZ 지역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이상엽은 그곳에서 전쟁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는 여러 증거들을 볼 수 있었다. 일상인 듯 도로를 질주하는 전차,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투헬기, 팽팽하게 조여진 남방한계선 철책 등...

여기서 유독 이상엽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DMZ 안의 숲이었다. 나무들은 아예 자라지 못하거나, 기괴하게 웃자랐다. 서로 무리를 이루는 관목과 덤불들조차 외따로 서 있거나 옆으로 자랐다. 키 작은 풀들이 산들거리는 초원, 물을 마시는 노루들 역시 잘못 그려진 세트장 같았다. 어디서도 이런 숲을 본 적이 없었다. DMZ이 세계 유일이듯이.

57년이 지났으니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야 했을 나무들이, 남과 북이 서로의 시계확보를 위해 수시로 놓는 산불로 인해 ‘숲’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숲이면서, 숲이어서는 안 되는 숲. DMZ 숲의 운명이었다. 숲에 불을 지를 때마다, 땅 아래 묻힌 지뢰들이 축포처럼 터진다고도 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숲을 지나 온 노루의 발자국 밑에도, 공중을 나는 백로의 그림자 안에도, 지뢰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상엽의 카메라는 총처럼 그 숲을 겨누었고, DMZ 숲 연작을 전리품으로 거두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슬픈 현실을 증거하는 숲이자, 이상하게 기묘해서 아름답기조차 한 숲으로서, 오히려 무기로서의 총과, 총부리 겨눔에 항거하는 서정적 전리품이 되고 있다. “만일 허가되지 않은 사진을 공개할 경우 불이익은 감수하라”는 나직한 경고 속에 거대한 망원렌즈로 밖에는 담을 수 없었던 풍경이지만, 흐릿한 망점조차 다가갈 수 없는 DMZ 숲의 운명을, 한반도 땅의 1/250(총 907㎢ 약 2억 7천만평)을 DMZ으로 지닌 오늘 우리의 현실을 강조할 뿐이다.

먼 훗날 이 땅이 평화로울 때 그의 사진이 ‘긴장’ 되었던 때를 떠올릴 교훈의 도구이길 바란다는 사진가 이상엽. 오는 6월 22일부터 7월 4일까지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에서 ‘이상엽의 이상한 숲 DMZ’이라는 제목으로 이 DMZ 숲 연작을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 운영자로서 전 방위적인 부지런함을 내남없이 인정하는, 이상엽의 여덟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 문의 : 류가헌 02-720-2010

line_dot.png

lsy-02.jpg 
이상엽_<이상한 숲, DMZ>#2_digital inkjet print


lsy-03.jpg 
이상엽_<이상한 숲, DMZ>#3_digital inkjet print


lsy-04.jpg 
이상엽_<이상한 숲, DMZ>#4_digital inkjet print


lsy-05.jpg 
이상엽_<이상한 숲, DMZ>#5_digital inkjet print

   사진가 profile & note
line_dot.png

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가, 르포작가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 imagepress.net 운영자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2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월간 <사회평론 길>에서 글을 쓰면서 늦게 사진을 시작했다. 1995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여러 매체에 사진과 글을 기고했다. 1997년 몇몇의 동인들과 시험적인 인터넷 사진 매거진 <다큐네트>를 창간했고, 1999년 진보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창간했다. 2001년 사진집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미래를> 이후 출판에 힘을 써 <이상엽의 실크로드 탐사>, <그 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등의 개인 저서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1, 2>, <이미지프레스 무크 1, 2>를 기획하고 저술했다.

개인전
2004년 <머나먼 실크로드> 수유+너머, 서울
2005년 <아시아> 브레송, 서울
2005년 <아시아 공감>전 네이버
2007년 <중국 1997~2006> 갤러리 나우, 서울. 고토 갤러리, 대구. 영광갤러리 부산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2008년 <청계의 나날들> 대안공간 건희, 서울
2008년 <인 투 핫 라이트> 갤러리 루, 서울

기획 및 전시
2000년 < NO WAR NO CRY>, 문화일보갤러리, 서울
2001년 <경기도, 도자 예술의 혼>, 인천국제공항특별전시장, 인천
2001년 <이미지프레스 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 포토아이갤러리 등, 서울
2002년 <이주노동자들의 삶>, 느티나무까페 등 전국 공단지역
2005년 <여행하는 나무> 브레송

단체전 참여
2000년 <젊은 사진가전> 대구시민회관
2004년 <동강 사진 페스티발>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영월
2005년 <동감> 4인의 이주노동자전, 서울시청 앞, 서울
        <아시아전> 김지하 '생명포럼' 주간 파주 출판단지 아시아센터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광주문화예술진흥원 구 전남도청
2006년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대안공간 휴 홍대앞
2007년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피스, 인사동 서울
        <가장 먼 여행> 디자인센터, 부산
2008년 <사랑>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섬> 광주미술관 인사동, 서울
        <타클라마칸에서 파미르까지, 실크로드에서 보내는 편지> 브레송, 서울
        <서울포토페어, 프레> 코엑스, 서울
2009년 <제1회 서울포토페어> 코엑스, 서울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대림미술관, 서울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영국
        <멈춘전쟁> 전쟁기념관, 서울
        <무고한 세계: the Innocent World> 광화문 야외전시장, 서울 등    

수상
2006년 나우갤러리사진상

line_dot.png

   DMZ, 6월의 그 푸르고 이상한 숲 
line_dot.png

DMZ, 6월의 그 푸르고 이상한 숲

글 / 이상엽


철원에 다녀왔다. 서울도 비가 온다기에 취재 망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이곳은 비가 오지 않는다. 작년부터 DMZ가 보이는 전망대에 수 없이 올랐지만 이곳 태풍 전망대는 민간인 비공개지역이라 조금은 특별하다. 그곳에서 대대장에게 사진에 대한 준수사항은 이미 알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내달라하고 풍경을 감상했다. 역시나 이날도 흐리다. 거의 한 번도 맑은 날을 보지 못했다. 운이라 생각할 밖에. 하지만 그 풍경이 내겐 더 좋다. 무엇인가 감춘 듯, 슬픈 듯, 우울한 듯. 마침 비도 내려줄 것 같다. 수첩을 꺼내 평소와 다르게 시 한줄 적는다.

남북이 싸질러놓은 불길에도 / 푸르렀다. / 한 치 틈도 없이
6월, DMZ는 그랬다. / 골프장처럼 / 화원처럼 / 원시림처럼 / 푸르렀다.
그곳에서 민족을 생각했냐고? / 그곳에서 분단을 생각했냐고?
그냥 푸르렀다.

내 망막은 / 내 뇌는 / 그저 푸르름을 먼저 알았다.
300mm 망원 렌즈 너머로 빠져들 듯 / 임진강을 본다. / 하지만 내가 다가간 것은 아니다. / 그저 확대됐을 뿐 / 나는 제자리에서 한 치도 다가서지 못했다.

강은 푸르렀다. / 푸른 제복 입은 GOP 경계병이 담배를 핀다. / 웃음기 없는 이 청춘의 연기도 푸르렀다.

태풍전망대로 세찬 바람이 지난다. / 펄럭이는 유엔기도 푸르렀다. / 그냥 모든 것이 푸르렀다.

요즘 참 우울한 날들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타인에게 많은 고민의 시간을 준다. 나 역시 그 고민 속에서 걷고 찍고 생각한다. 분단의 땅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황홀함이 아닌 쓸쓸함이다. 이 땅 DMZ는 전쟁 중에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품고 있고, 수많은 지뢰를 품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맹렬한 불덩어리를 품고 있다.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은 아니지만 이 풍경은 결코 자연 그대로는 아니다. 그 변형된 풍경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슬픈 아름다움이다. 저 푸른 나무들과 숲을 보면서, 사랑하게 됐다. DMZ를.

line_dot.png

   전시 서문 _ ‘이상엽의 이상한 숲’ 전시에 부쳐
line_dot.png

나는 ‘섬나라 사람’이다

글 / 이문재 시인


여기는 섬나라다. 반도가 아니다. 삼면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이 형용모순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섬의 북쪽을 보라. 반도의 남쪽을 섬으로 만든 ‘북해’는 바닷물이 없는 바다,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바다다. 저 바다는 해안선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책선으로 둘러쳐졌다. 인간이 조성한 가장 삼엄한 해안이다. 그리하여 남한의 북해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극지다. 세계의 끝이다.

이곳은 섬나라다. 국제열차가 통과하지 않아서 섬나라다. 아시아하이웨이가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섬나라다. ‘해외’라는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도 이곳이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을 ‘외국’ 여행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우리나라가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지독한 비현실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못 박고 있지만, 우리는 반도의 북쪽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다. 반도의 북쪽에서도 남쪽을 반기지 않는다.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가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불구화하는 근원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대륙과 연결된 반도에 사는 섬나라 사람이다.

섬나라의 북쪽은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이 비논리 또한 우리의 ‘불편한 진실’이다. 남한의 ‘북해’가 북한의 ‘남해’다. 남한을 섬나라로, 북한을 반도로 만든 저 이상한 바다를 우리는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의 강력한 군사력이 결집되어 있는 과잉무장지대다. 비무장지대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전면적인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긴장지대다. 비무장지대에서의 과잉무장 대결. 이 지독한 역설이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 초현실로 보이는 현실. 그래서 정전 상태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이 1953년 7월 끝났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섬나라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대륙적 상상력이 남아 있다. 전철을 타고 퇴근할 때, 저 대륙적 DNA가 출몰할 때가 있다. 시청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연천, 평강, 추가령지구대를 지나 원산, 문천, 고원, 함흥, 단천, 웅기. 이윽고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브스크, 치타, 바이칼…… 서울역에서 일산가는 경의선을 탈 때에도 퇴근길이 길어지길 바라곤 했다. 임진강을 넘어 개성, 사리원, 평양, 신의주, 압록강을 건너 하얼빈…… 아버지까지는 섬나라사람이 아니었다.

분단 상황은 우리의 내면을 교란한다. 분단 상황은 언어를 분열시킨다. 실제로는 과잉무장지대인데 비무장지대라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분단 시대의 언어는 기표와 기의 사이가 너무 멀다. 반도의 남쪽을 섬나라로, 반도의 북쪽을 작은 반도로 왜곡시킨 이데올로기는 남과 북의 상상력을 옥죄어 왔다. 남과 북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왜소해지고 편협해지고 치졸해져왔다. 남과 북의 옹색함이 오늘도 최대의 군사력으로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맞서고 있다. 남과 북의 충돌 가능성이 완충지대 양쪽에서 서로를 ‘24시간 정조준’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생각한다. 전쟁과 전쟁 사이가 평화가 아니다. 전쟁 억지력이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 무기는 또 다른 무기를, 더 강력한 무기를 부른다. 평화를 위한 전쟁은 언제나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진정한 평화는, 선각들이 갈파해왔듯이, 오로지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비무장지대에 평화는 없다. 비무장지대는 ‘음산한 고요’의 지대이다. 비무장이 없는 비무장지대, 완충 능력이 없는 완충지대에서 상상한다.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꿈꾸는 것은 무모하다. 그래서 다시 상상한다. 나로부터 시작하자. 대륙의 아들로 태어나 섬나라 젊은이로 성장한 나로부터 출발하자. 내 마음의 무장지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내 안의 충돌지대를 꼼꼼히 살펴보자. 내 몸과 마음이 온통 과잉 무장지대는 아니었는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가로막아온 ‘반통일 세력’이 바로 내 안에 있지는 않았는가.

비무장지대에서, 섬나라에서 생각한다. 평화는 없다. 과거에도 없었다. 평화로 가는 특별한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평화가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 여기에서 내가 먼저 평화적 수단이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저마다 평화적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여기 비무장지대는 세계의 끝이 아니다. 비무장지대는 새로운 세계, 말 그대로 ‘비무장 평화 시대’가 시작되는 발원지일 수 있다. 땅끝에서 돌아서면, 거기가 땅의 시작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뒤로 돌아서자. 우리가 먼저 저마다 ‘비무장지대’가 되자. 평화가 되자.


line_dot.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