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섬나라 사람’이다
글 / 이문재 시인
여기는 섬나라다. 반도가 아니다. 삼면만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이 형용모순이 우리의 지독한 현실이다. 섬의 북쪽을 보라. 반도의 남쪽을 섬으로 만든 ‘북해’는 바닷물이 없는 바다, 민간인이 접근할 수 없는 바다다. 저 바다는 해안선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책선으로 둘러쳐졌다. 인간이 조성한 가장 삼엄한 해안이다. 그리하여 남한의 북해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극지다. 세계의 끝이다.
이곳은 섬나라다. 국제열차가 통과하지 않아서 섬나라다. 아시아하이웨이가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섬나라다. ‘해외’라는 단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것도 이곳이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을 ‘외국’ 여행이라고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우리나라가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지독한 비현실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라고 못 박고 있지만, 우리는 반도의 북쪽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을 수 없다. 반도의 북쪽에서도 남쪽을 반기지 않는다. 헌법과 현실의 불일치가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불구화하는 근원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대륙과 연결된 반도에 사는 섬나라 사람이다.
섬나라의 북쪽은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이 비논리 또한 우리의 ‘불편한 진실’이다. 남한의 ‘북해’가 북한의 ‘남해’다. 남한을 섬나라로, 북한을 반도로 만든 저 이상한 바다를 우리는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른다. 비무장지대. 그러나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의 강력한 군사력이 결집되어 있는 과잉무장지대다. 비무장지대는 완충지대가 아니라 전면적인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는 긴장지대다. 비무장지대에서의 과잉무장 대결. 이 지독한 역설이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 초현실로 보이는 현실. 그래서 정전 상태가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이 1953년 7월 끝났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나는 섬나라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대륙적 상상력이 남아 있다. 전철을 타고 퇴근할 때, 저 대륙적 DNA가 출몰할 때가 있다. 시청에서 의정부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연천, 평강, 추가령지구대를 지나 원산, 문천, 고원, 함흥, 단천, 웅기. 이윽고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브스크, 치타, 바이칼…… 서울역에서 일산가는 경의선을 탈 때에도 퇴근길이 길어지길 바라곤 했다. 임진강을 넘어 개성, 사리원, 평양, 신의주, 압록강을 건너 하얼빈…… 아버지까지는 섬나라사람이 아니었다.
분단 상황은 우리의 내면을 교란한다. 분단 상황은 언어를 분열시킨다. 실제로는 과잉무장지대인데 비무장지대라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분단 시대의 언어는 기표와 기의 사이가 너무 멀다. 반도의 남쪽을 섬나라로, 반도의 북쪽을 작은 반도로 왜곡시킨 이데올로기는 남과 북의 상상력을 옥죄어 왔다. 남과 북의 상상력은 끊임없이 왜소해지고 편협해지고 치졸해져왔다. 남과 북의 옹색함이 오늘도 최대의 군사력으로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맞서고 있다. 남과 북의 충돌 가능성이 완충지대 양쪽에서 서로를 ‘24시간 정조준’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생각한다. 전쟁과 전쟁 사이가 평화가 아니다. 전쟁 억지력이 평화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 무기는 또 다른 무기를, 더 강력한 무기를 부른다. 평화를 위한 전쟁은 언제나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진정한 평화는, 선각들이 갈파해왔듯이, 오로지 ‘평화적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비무장지대에 평화는 없다. 비무장지대는 ‘음산한 고요’의 지대이다. 비무장이 없는 비무장지대, 완충 능력이 없는 완충지대에서 상상한다. 비무장지대에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꿈꾸는 것은 무모하다. 그래서 다시 상상한다. 나로부터 시작하자. 대륙의 아들로 태어나 섬나라 젊은이로 성장한 나로부터 출발하자. 내 마음의 무장지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내 안의 충돌지대를 꼼꼼히 살펴보자. 내 몸과 마음이 온통 과잉 무장지대는 아니었는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가로막아온 ‘반통일 세력’이 바로 내 안에 있지는 않았는가.
비무장지대에서, 섬나라에서 생각한다. 평화는 없다. 과거에도 없었다. 평화로 가는 특별한 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평화가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 여기에서 내가 먼저 평화적 수단이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저마다 평화적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여기 비무장지대는 세계의 끝이 아니다. 비무장지대는 새로운 세계, 말 그대로 ‘비무장 평화 시대’가 시작되는 발원지일 수 있다. 땅끝에서 돌아서면, 거기가 땅의 시작이다. 비무장지대에서 뒤로 돌아서자. 우리가 먼저 저마다 ‘비무장지대’가 되자. 평화가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