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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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장날의 축제
기획 김지연

장날에는 늦장을 부리는 법이 없다. 암탉 몇 마리가 낳은 계란을 짚으로 가지런히 묶고 참깨도 두어 되 보따리에 싸고 농사지은 밀로 국수나 좀 빼먹게 서너 말 자루에 담아서 영자네 소달구지에 실려 보내고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른 할머니는 깨끗이 다듬은 무명옷을 차려입고 새벽밥을 재촉해먹고 장 나들이를 나선다. 마을 어귀에서 만나는 순자네 아버지 동수네 어머니 용식이 할아버지도 풀을 빳빳이 해서 다린 옥양목 자락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길을 재촉하며 사뭇 상기된 표정들이다. 가지고나간 물건들은 주인을 잘 만나 좋은 값에 빨리 처분하면 자식들 고무신이나 한 켤레 사고 짭짜름한 간 고등어나 한 손 사들고 돌아오겠지만 장 나들이는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상거래 장소만이 아니었다.

타박타박 시오리 길을 걸어서 장에 당도하면 순자네 아버지나 용철이 할아버지는 우선 우시장을 기웃거린다. 지난 가을에 산 송아지가 제 값을 받을 수 있을지 시세를 알아보는 일이다. 암송아지를 키워 어미 소를 만들고 그 어미 소가 새끼를 낳아서 잘 파는 일은 유일하게 목돈을 만지는 일이었다. 인근 마을의 남정네들이 모두 기웃기웃하니 소전은 활기를 띤다. 형편이 안 되어 소를 못 키우는 영수네 아버지도 언젠가 작은 송아지라도 살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고 소전을 기웃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당연히 근처에는 소머리 국밥집이 있어 그곳에서 막걸리도 한 잔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동수네 어머니나 울 할머니는 가지고간 물건들을 얼른얼른 넘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국수공장으로 향한다. 국수를 빼서 말리는 동안 장터 길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팥죽집에서 팥죽 한 그릇씩을 사먹고 여기저기 장 구경을 다닌다. 동동 구루무(크림의 일본어 식 발음-북을 치며 크림을 용기에 퍼 담아서 파는 화장품) 장사를 만나 향그러운 크림 냄새와 함께 구성진 노래 가락도 듣고 약장사 쇼도 구경하고 대장간에 가서 농기구도 골라보고 아이들 양말이라도 한 켤레 씩 사주었으면 하고 잡화점도 기웃거리다보면 해가 기웃해진다.

일 년을 가도 장날 아니고는 이런 눈 호강 마음 호강하는 날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축제였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만이 축제가 아니다. 직거래장터, 우시장의 흥청거림, 오랜만에 만나는 타동네 사람들과 그들의 소식, 장꾼들의 치열하면서도 훈훈한 인심, 심지어는 야바위꾼들의 수작까지 옛 장날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유일한 일탈의 장소였다.

그런데 농촌 경제가 기울면서 시장의 형태는 무너지고 언제부턴가 영세한 상인과 농어촌이나 도시서민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쓸쓸한 상거래소로 변모했다.

재래시장은 자체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현대화된 대형마트로 소비의 중심이 급격히 이동되고, 날조된 지역 축제 행사 등은 우리 삶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는 지난날의 사진의 역사를 통해서 추억 하나, 마음 하나를 챙기며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작업에 겸허히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진다.

*근대사진 : 사진아카이브 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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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장.1920년대.jpg 
전주시장.1920년대

구례시장.1920년대.JPG 
구례시장.1920년대

구례장.1993년(이용원).jpg 
구례장.1993년(이용원)

남원장.1998년(이용원).jpg 
남원장.1998년(이용원)

사리원시장.1920년대.jpg 
사리원시장.19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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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장.1989년(이용원)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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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사진전에 부쳐

이용원

사진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영상미에 매료되어 사진을 시작한지 벌써 20여년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그동안 무엇인가 뜻있는 사진작업을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강하게 와 닿는 것이 어린 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죽산에서 7-8km나 되는 김제 부안 백산면의 장터에 가본 그리움이었습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갖가지 희로애락이 넘나드는 시골 장터의 참모습은 지금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신기하고 정겹기 만해서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장터를 찾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여러 가지 장면들을 모아 1993년도에 아쉬운 대로 여러 사람 앞에 장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선보인 바도 있습니다.

이제 장터도 현대화되어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면서도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았던 사랑의 장 내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번 전시 되는 사진들은 90년대 초 중 후반으로 나누어 선별 한 것입니다. 전라북도 지방 장터에서 그래도 옛 맛이 나는 곳은 남원장을 으뜸으로 치고 장수, 순창, 오수, 임실, 진안장 등이 지금도 그리움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전라남도에서는 구례, 곡성, 담양장 등이 그래도 서로가 웃으며 대화 하는 것처럼 느껴져 각가지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기 좋습니다. 충청남도에서는 금산장이 으뜸이고 부여장도 이곳저곳 볼거리가 많습니다. 옛 부터 장터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가 정을 나누며 반가운 얼굴로 정보를 교환하고 오랜만에 만나 인사도 나누는 장으로 기억되고, 훈훈한 정이 깃든 우리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장터는 생존 경쟁의 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듯하며 서로가 언행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인정사정, 위아래도 없이 낯을 붉혀야 하는 현대판 시장 나들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도 시골 장터에 가면 장터 아저씨들이 막걸리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 것을 볼 때면 옛날의 훈훈함이 느껴져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오랫동안 장터를 찾아 다녀보니 얼마 전까지 보였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그저 작은 일에도 허탕하게 웃어 주셨던 모습이 아쉬워지기도 합니다. 이럴 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장터를 집 삼아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속 깊이 건강을 기원해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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